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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金長煥

1961년 7월 3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선출

역사는 성과와 과오를 함께 기록하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을 외면하지 않을 때 더 성숙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 시대 개막, 경제개발과 유신독재의 양날

1961년 오늘, 박정희 육군 소장이 제2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선출되었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5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장도영이 맡았지만, 군 내부의 실권은 이미 박정희에게 있었다. 이후 장도영이 축출되고 박정희가 의장에 오르면서 군사혁명위원회는 박정희 체제로 재편되었다. 즉 군사 정변의 실질적 주도자가 국가 최고 권력자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4·19혁명 이후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이 계속되고 있었다. 박정희는 이를 극복한다는 명분 아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수출 중심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그 결과 오랜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 출발은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군사 쿠데타였다. 더욱이 권력은 유신독재로 이어지며 장기 집권과 정치적 탄압, 언론 통제,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경제 발전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희생해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지금까지도 중요한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박정희 시대를 바라보는 평가는 엇갈린다.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발전을 이룬 산업화의 영웅으로 기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국가보안법’ 위에 ‘반공법’을 덧씌워 정치인·학생·지식인·언론인까지 매카시즘적으로 탄압하며 영구집권을 추진한 유신독재 통치자로 평가하는 이도 있다.

어느 한쪽만을 절대시하는 것은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는 태도가 아니다. 공은 인정하되 과는 과대로 성찰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역사는 성과와 과오를 함께 기록하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성숙한 민주주의와 더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1961년 전후

  • 1960년 4·19혁명 이후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
  •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
  • 1961년 7월 3일 박정희, 제2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선출
  • 이후 —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수출 주도 산업화 / 유신독재와 장기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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