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943년 7월 9일, 태조 왕건 「훈요 10조」를 남기다
나라를 세우는 영웅보다, 나라를 오래 지키는 통합의 지도자가 더 위대합니다.
통합의 리더십, 고려 왕조 500년의 기반이 되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창업 군주 태조 왕건은 자신의 생을 마감하며 후손들에게 「훈요 10조」 를 남겼다. 전쟁으로 나라를 세운 군주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무기나 군사가 아니라 ‘통치의 원칙’ 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뒤, 후백제와 신라를 아우르며 후삼국을 통일했다. 그러나 그는 통일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로 다른 지역과 세력을 하나의 나라로 묶기 위해서는 힘보다 신뢰와 포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던 것이다.
「훈요 10조」에는 불교를 국가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을 것, 북방 민족을 경계할 것, 지방의 풍속을 존중할 것, 왕실의 권력 다툼을 경계할 것 등 국가 운영의 원칙이 담겨 있다. 특히 차령산맥 이남과 공주강 밖의 인물을 경계하라는 조항은 오늘날 지역 차별 논란도 있지만, 당시 호족 세력과의 정치적 이해가 반영된 시대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왕건의 정치 철학은 무력보다 통합에 있었다. 그는 적장을 포용하고, 호족과 혼인으로 연대했으며, 신라 왕실을 예우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고려가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러한 통합의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극단적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고 있다. 서로를 꺾으려는 경쟁보다 함께 살아갈 질서를 만드는 지혜가 절실한 시대다. 왕건이 마지막 순간까지 후손들에게 남긴 가르침은 결국 하나였다. 나라를 세우는 영웅보다 나라를 오래 지키는 통합의 지도자가 더 위대하다는 사실이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태조 왕건의 마지막 유언은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훈요 10조」에 담긴 원칙
- 불교를 국가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을 것
- 북방 민족을 경계할 것
- 지방의 풍속을 존중할 것
- 왕실의 권력 다툼을 경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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