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김장환金長煥

1904년 7월 16일, 마지막 항일 언론 대한매일신보 창간

언론의 자유는 국적이 아니라 양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남겼습니다.

한국을 사랑한 영국 언론인, 베델 이야기

1904년, 오늘은 영국인 토머스 베델(한국명 배설 裵說)과 양기탁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이 신문은 단순한 언론이 아니라 나라를 잃어가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항일 언론이었다.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에 온 베델은 일본군이 “조선을 보호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침략을 자행하는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기자의 양심을 외면할 수 없다며 양기탁·박은식·신채호 등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다. 이 신문은 일본의 침략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의병 항쟁과 국채보상운동을 적극 보도하며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구심점이 되었다. 한글판과 영문판을 함께 발행해 국제사회에도 일본의 침략상을 알렸다.

일본은 그를 수없이 압박했으며, 결국 영국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언론 활동에 큰 제약을 받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탄압 속에서도 “정의를 위해 싸우는 언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로와 병으로 1909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에서 생을 마쳤다. 양화진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한국을 위해 몸을 바쳤다” 는 글이 새겨져 있다.

베델 사후 신문사는 조선총독부로 넘어가 ‘매일신보’로 이름이 바뀌고 식민통치를 선전하는 기관지로 변모했다. 한때 민족의 저항을 상징했던 신문이 총독부의 시녀가 된 것은 우리 언론사에서 가장 뼈아픈 역설로 회자되고 있다.

언론은 권력의 편에 설 수도 있고, 진실의 편에 설 수도 있다. 그러나 베델은 외국인이었지만 진실을 선택했고, 나라를 잃어가던 조선인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총칼은 한 시대를 지배할 수 있지만, 진실을 기록한 언론은 역사를 움직인다. 대한매일신보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언론의 자유는 국적이 아니라 양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대한매일신보

  • 창간 — 1904년 7월 16일, 베델(배설)과 양기탁
  • 참여 — 박은식 · 신채호 등
  • 특징 — 한글판·영문판 동시 발행, 의병 항쟁과 국채보상운동 보도
  • 베델 — 1909년 37세로 별세. 양화진 묘비 “한국을 위해 몸을 바쳤다”
  • 이후 — 총독부로 넘어가 ‘매일신보’로 변모
공유하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