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975년 9월 2일, 유신정권 학도호국단을 부활하다
학교는 국가가 원하는 학생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학도호국단의 탄생과 부활, 그리고 역사적 교훈
1975년 9월 2일, 전국 학도호국단 발단식이 열렸다. 당시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일면 면학, 일면 호국’ 이었다.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동시에 국가안보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때의 학도호국단은 두 번째 창단이었다. 1949년 정부 수립 직후 좌우 대립과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상황에서 이승만 정부는 학교를 반공정신과 국가관을 길러내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에 따라 전국 중학교 이상 947개교, 약 45만 명을 학도호국단으로 묶고 교련, 방위훈련, 반공교육을 실시했다. 결국 학생들을 국가가 요구하는 질서와 이념에 맞게 조직하고 동원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허정 과도정부는 국무회의에서 학도호국단 해체를 의결함으로써 학도호국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15년 뒤, 사라졌던 학도호국단이 다시 등장했다. 1972년 발표된 유신헌법에 반발하는 전국의 고등학생·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박정희 정부는 학생운동을 억제하기 위해 1975년 학도호국단을 부활시키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1949년과 1975년의 학도호국단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시대적 맥락은 사뭇 달랐다. 1949년에는 반공과 국가방위라는 명분이 강했다면, 1975년에는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을 억압하고 학생사회를 통제하려는 기능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다 1985년 학생자치기구(총학생회)가 부활하면서 학도호국단은 폐지되었지만, 학도호국단이 남긴 역사적 교훈은 너무도 선명하다. 학교는 국가가 원하는 학생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학교인 것이다.
학도호국단의 두 얼굴
- 1949년 창단 — 중학교 이상 947개교, 약 45만 명. 교련·방위훈련·반공교육
- 1960년 — 4·19혁명 후 허정 과도정부가 해체 의결
- 1975년 9월 2일 부활 — ‘일면 면학, 일면 호국’. 유신 반대 학생운동 억제 목적
- 1985년 — 총학생회 부활과 함께 폐지
- #한국사
- #현대사
- #교육
- #유신체제
-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