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김장환金長煥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불리한 조건 때문에 적이 예상하지 못할 인천을 택한 역발상의 작전은 전세를 뒤집은 결정적 발판이 되었습니다.

‘불리한 조건이 가장 효과적’, 역발상의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15일 새벽, 인천 앞바다는 긴장에 휩싸였다. 석 달 전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계속 밀려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한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곳을 선택했다. 바로 인천이었다.

인천은 상륙작전을 벌이기에 결코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조수 간만의 차가 매우 크고 좁고 긴 수로를 통과해야 했으며, 높은 방파제까지 넘어야 했다. 미 합참은 상륙 여건이 좋은 군산을 대체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오히려 그 불리한 조건 때문에 북한군이 인천 상륙을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위험한 곳이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역발상이었다.

작전명은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였다. 유엔군은 상륙에 앞서 군산에 대한 양동작전과 포격을 실시해 북한군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9월 13일부터는 인천과 월미도에 함포사격과 공중폭격이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9월 15일 새벽,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유엔군은 인천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김포비행장을 장악한 뒤 서울을 향해 진격했다. 마침내 낙동강 전선에 집중되어 있던 북한군의 병참선을 한순간에 끊어버리며 작전 개시 13일 만인 9월 28일, 수도 서울을 완전히 되찾았다.

이 작전을 기점으로 수세에 몰렸던 아군이 공세로 전환하여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결정적 발판이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은 불리한 조건을 적의 허점으로 바꾼 전략적 결단이 전쟁의 흐름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인천은 9월 30일 탈환되었고, 이날을 기념하여 9월 30일은 ‘인천시민의 날’이 되었다.

공유하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