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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金長煥

1920년 7월 7일, 홍범도 봉오동 전투 승리

나라는 누가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지켜 내는 것입니다.

나라는,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고 지켜내는 것이다

1920년 7월 오늘, 만주 봉오동 골짜기에는 대한독립군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을 비롯한 독립군 연합부대는 추격해 온 일본 정규군을 계곡 깊숙이 유인한 뒤 사방에서 집중 공격을 퍼부어 대승을 거두었다. 나라를 빼앗긴 지 10년, 절망 속에 신음하던 백성들에게 희망을 안겨 준 역사적인 승리였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영구히 지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수많은 독립군은 열악한 무기와 부족한 군수품 속에서도 지형을 활용한 치밀한 전술과 굳건한 단결로 제국주의 군대를 무너뜨렸다.

봉오동의 승전은 단순한 전술적 성공에 머물지 않았다.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높였고, 국내외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기세는 석 달 뒤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져 일본군을 다시 한번 크게 격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봉오동은 대한민국 무장 독립운동사의 새로운 전기를 연 출발점이었다.

오늘 우리는 총칼을 들고 나라를 지켜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국가를 지키는 책임과 자유를 수호하려는 의지는 여전히 중요한 우리의 책무로 남아 있다. 국가의 존망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지켜낸 것은 결국 깨어 있는 국민이었음을 역사는 끊임없이 증명해 왔다.

봉오동의 계곡에는 더 이상 총성이 울리지 않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선열들의 신념은 오늘도 우리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나라는 누가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지켜 내는 것이라고…. 봉오동 전투가 1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도 살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봉오동 전투

  • 시기 — 1920년 7월 7일, 만주 봉오동
  • 지휘 —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을 비롯한 독립군 연합부대
  • 전술 — 계곡으로 유인한 뒤 사방에서 집중 공격
  • 의의 — 석 달 뒤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진 무장 독립운동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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