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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金長煥

1964년 8월 7일, 미국 의회 통킹만 결의안 통과

훗날 조작으로 밝혀진 사건 하나가, 10년 전쟁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김장환의 오늘의 역사 — 1964년 8월 7일 미국 의회 통킹만 결의안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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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이론’ 명분의 베트남 10년 전쟁 시작

1964년 8월 7일, 미국 의회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킹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불과 며칠 전 북베트남 해군이 미 구축함을 공격했다는 보고가 근거였으며, 이 결의안은 대통령이 취하는 모든 조치를 승인하고 지지한다는 내용으로 베트남에 군사를 투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겠다는 ‘도미노 이론’ 을 내세우며 남베트남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킹만 사건은 이러한 개입을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결정적 명분이 되었다. 문제는 훗날 밝혀진 진실이었다. 1971년 뉴욕 타임스는 미 국방부의 비밀보고서인 ‘펜타곤 페이퍼’ 를 입수해 통킹만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폭로했다. 즉 미국이 베트남 전쟁 개입 명분을 만들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 조작된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베트남전이라는 긴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200만 명의 베트남 민중과 5만 8천 명의 미군, 그리고 5천여 명의 한국군이 목숨을 잃은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해 재선에 성공한 존슨은 이듬해 북베트남에 대한 전면적 공중 폭격 작전을 개시했고, 지상군 부대를 파병했다.

베트남 파견 미 전투부대 규모는 1965년에 19만 명, 1968년에는 54만 명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태국,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등도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이 전쟁의 사상자 수는 제1차 세계대전을 웃돌고, 사용된 폭탄의 양은 2차 대전 전 기간보다 많았다.

막대한 전쟁 비용과 반전 여론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미국 내부를 깊이 분열시켰고, 결국 미국은 승리하지 못한 채 1975년 철군했다. 이로써 인도차이나 반도의 패권을 두고 벌어진 이 전쟁은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남기고 1975년 베트남의 공산화로 종결되었다.

통킹만 결의안 이후, 숫자로 보기

  • 미 전투부대 — 1965년 19만 명 → 1968년 54만 명
  • 희생 — 베트남 민중 200만 명 · 미군 5만 8천 명 · 한국군 5천여 명
  • 1971년 — ‘펜타곤 페이퍼’로 통킹만 사건 조작 폭로
  • 1975년 — 미군 철수, 베트남 공산화로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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