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959년 8월 10일, 우장춘 박사 수원 여기산에 잠들다
씨앗의 자립으로 조국에 진 빚을 갚으려 했던 농업 과학자.
씨앗 개발로 부친의 매국의 빚을 갚은 농업 과학자
1959년 8월 10일은 대한민국 농업의 기틀을 세운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가 6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는 부친이 저지른 매국의 대역죄를 자식으로서 속죄하기 위해 인생을 조국에 헌신하며 살아온 가장 극적인 인물이다.
우장춘은 1898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한 친일 매국노로, 사건 직후 일본으로 도망쳤다. 그는 평생 아버지의 친일 행적이 남긴 역사적 빚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일본에서 학문적 명성을 쌓으며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광복 후 그는 “조국의 농업을 일으키겠다” 는 일념으로 대한민국행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이미 다윈의 진화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세계적 식물학자였다. 배추와 무, 유채 등 십자화과 식물의 유전 원리를 밝힌 ‘우장춘 삼각형’ 은 오늘날까지도 식물 육종학의 중요한 이론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연구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과학적 토대를 마련하며 세계 농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업적은 한국에서 꽃피웠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식량이 부족했던 대한민국에서 그는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품종 개량에 매달렸다.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배추, 무, 고추, 양파, 토마토, 감자, 수박 등 수많은 채소 품종을 개발·보급했고, 무엇보다 외국산 종자에 의존하던 우리 농업이 스스로 종자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씨앗의 자립’은 곧 농업의 자립이었고, 이는 대한민국 식량 안보의 초석이 되었다. 2014년 우장춘 박사가 개발한 채소 종자의 연간 수출액이 1,700만 달러(270억 원)에 이를 정도였다.
우장춘 박사는 생의 마지막까지 “나는 조국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았을 뿐” 이라고 말했다. 친일파의 아들이라는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학문과 헌신으로 역사의 빚을 갚으려 했던 것이다.
우장춘 박사가 개발한 품종
- 한국 결구배추 · 무
- 제주 감귤 · 한라봉 · 유채
- 강원도 감자
- 금싸라기 참외 · 무추 · 코스모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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