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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金長煥

1821년 8월 21일,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 탄생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길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용인에서 태어났다!!

어제(8월 21일)는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이자 성인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날이었다. 1821년, 충청도 당진 솔뫼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그런데 이 정설에 의문이 생긴다. “김대건 신부는 정말 솔뫼에서 태어난 것일까?”

조선 왕실의 공식 기록인 「일성록」과 「헌종실록」에는 뜻밖의 기록이 남아 있다. 1846년 김대건 신부를 심문한 내용을 기록한 「일성록」에는 김대건을 두고 ‘용인 땅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의 ‘용인지태생(龍仁地胎生)’ 이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용어의 엄격한 구분이다. 당진에서 이주해 온 아버지 김제준에 대해서는 용인에 살고 있다는 의미의 ‘용인 거생(居生)’ 이라 표기한 반면, 김대건에 대해서는 ‘용인 태생(胎生)’ 이라 명시했다. 이는 국가 공권력이 피의자의 출생지를 얼마나 엄밀히 조사하고 기록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또한 「헌종실록」 역시 “대건은 용인 사람(大建以龍仁人)” 이라고 기록하여 관찬 사서 간의 완벽한 일치성을 보여준다. 두 기록 모두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관찬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또 기존 학설은 김대건이 1821년 태어났고, 가족이 1827년 정해박해 때 솔뫼를 떠났다고 추정하나, 이는 가문의 비극적인 역사적 맥락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실증적 분석을 통해 재구성한 가족의 이주 시기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증조부 김진후의 옥사(1814년), 종조부 김한현의 순교(1815년) 등 가문의 인물들이 연이어 체포되는 상황에서 조부 김택현과 부친 김제준만 당진에 남아 1827년까지 무사했을 가능성은 없다. 즉 증조부·종조부 두 분이 옥사하거나 순교하기 이전에 이미 당진을 떠났다는 얘기다. 더욱이 1827년의 정해박해는 전라도 곡성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당진과는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반대되는 사료가 분명히 존재한다. 김대건 신부의 신학생 후보 선발과 관련된 모방 신부의 기록에는 그를 ‘충청도 면천 솔뫼 출신’ 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최양업 신부의 기록과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시 솔뫼 출생을 정설로 보고 있다. 다만 이 기록들은 김대건 신부 본인의 증언이 아닌 제3자의 전언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과, 당시 가문의 세거지를 고향으로 인식하던 관습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용인 태생’이라는 기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대건은 용인에서 성장했으며, 1836년에는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 후보로 선발되었다. 특히 용인에는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 살았던 한덕골과 골배마실, 신앙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은이성지가 남아 있다. 따라서 김대건 신부에게 용인은 단순히 ‘잠시 머물렀던 곳’이 아니다. 그의 신앙과 삶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곳이며,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되기 위한 역사적 여정이 시작된 중요한 공간이다.

물론 역사는 지역의 소유물이 아니다. 김대건 신부가 솔뫼에서 태어났든, 용인에서 태어났든 그의 위대한 삶과 순교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사실인가를 사료를 통해 끝까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 용인시가 나서야 한다. 용인시는 「일성록」과 「헌종실록」의 기록을 비롯해 김대건 신부와 관련된 조선 후기 관찬 사료, 교회 기록, 가문 자료, 당시의 지리·호적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학술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8월 21일은 김대건 신부의 탄생일이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히 그의 생일만이 아니다. 그의 탄생지를 둘러싼 기록 속에 아직 풀리지 않은 역사의 질문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지역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일이 아니라, 역사 앞에서 사실을 바로 세우기 위한 우리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답이 무엇이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길이다.

엇갈리는 기록

용인 태생 설

  • 「일성록」(1846) — ‘용인지태생(龍仁地胎生)’. 부친 김제준은 ‘용인 거생(居生)‘으로 구분 표기
  • 「헌종실록」 — “대건은 용인 사람(大建以龍仁人)”
  • 두 기록 모두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 관찬 기록

솔뫼 출생 설

  • 모방 신부의 신학생 선발 기록 — ‘충청도 면천 솔뫼 출신’
  • 최양업 신부의 기록,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정설
  • 단, 본인 증언이 아닌 제3자의 전언에 기초

용인에 남은 흔적 — 한덕골 · 골배마실 · 은이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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