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김장환金長煥

1948년 9월 13일, 김병로 선생, 초대 대법원장 취임

독립운동가 김병로는 나라를 되찾은 뒤 권력으로부터 법을 지키며 대한민국 사법부 독립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민족을 지킨 독립운동가, 사법을 지켜낸 대법원장

1948년 9월 13일,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이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갓 태어난 대한민국의 사법부를 이끌 첫 수장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변호사였던 그가 선택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1887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김병로는 나라가 일본의 침략으로 기울어가던 시대를 살았다. 청년 시절 의병운동에 뜻을 함께했던 그는 나라를 잃은 뒤 일본으로 건너가 법학을 공부했다. 법관의 길에 들어섰지만 식민지 법정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판사직을 버렸다.

그가 선택한 길은 변호사였다. 그러나 김병로에게 변호사는 돈과 명예를 얻는 직업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의 변호를 맡았다.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안창호 사건 등 민족의 운명이 걸린 재판마다 그의 이름이 있었다. 특히 독립운동 관련 피고인들을 무료로 변론하며 일제의 부당한 탄압에 맞섰다.

그에게 법정은 나라 잃은 민족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투쟁하는 또 다른 독립운동 현장이었다. 스스로를 ‘나라를 잃고 거처할 곳 없는 거리의 사람’이라는 뜻의 가인(街人)이라 부른 그의 호에는 나라 잃은 민족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권력보다 양심을, 자리보다 정의를

광복 이후 김병로 선생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은 독립된 나라의 법과 사법부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그는 미군정기 사법부장을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9년여 동안 정치권력의 압력과 외부의 간섭에 맞서며 사법부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당시 대통령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던 시대에도 그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법원의 판결에 정치권력이 간섭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은 오늘날까지 사법부 독립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법관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법관은 양심과 이성을 생명처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법관으로서 본분을 지킬 수 없다면 자리를 지키기보다 용감하게 사법부를 떠나라고 했다. 권력보다 양심을, 자리보다 정의를 선택하라는 엄중한 가르침이었다.

김병로 선생이 존경받는 이유는 단지 초대 대법원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독립을 위해 법을 무기로 싸웠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는 권력으로부터 법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김병로 선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법이 권력의 편에 서는 순간 정의는 무너지고, 법관이 양심을 잃는 순간 사법부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독립운동가 김병로가 민족을 위해 법을 들었다면,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는 대한민국을 위해 법의 독립을 지켰다.

권력이 강해서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니라,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법과 양심이 있을 때 나라의 정의는 살아나는 것이다.

공유하기 페이스북